지난 글들에서 우리는 필리핀이 세계에서 가장 긴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낸다는 재밋는 사실과 그 이유, 그리고 이 기간에 필리핀에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필리핀 사람들이 그토록 긴 시즌의 정점인 크리스마스 당일을 어떻게 보내는 지 한번 볼까요. 마침 필리핀 현지 분들이 이 중요한 명절을 직접 보내는 모습을 제가 옆에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생겨 이렇게 글로 남겨봅니다^^


크리스마스 날 한 가정집의 외관과 내부 모습입니다. 건물의 창문과 외벽은 필리핀 크리스마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인 등불 장식 파롤(Parol)과 각종 불빛들로 화려하게 치장 되어 있습니다. 집 안에 들어가면 실내도 바깥 못지 않게 멋지게 꾸며져 있는데요. 벽면이나 테이블 위에 전구 장식과 조화는 기본이고 크리스마스의 핵심인 커다란 나무 트리가 거실에 자리해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엄청난 양의 포장된 선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이 즈음 주변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정성껏 준비하는데 이는 가족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친구, 직장 동료까지 챙기다 보니 준비해야 할 선물이 결코 적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선물 준비에만 많은 시간이 걸리고 구매 비용도 어마 어마 합니다:;;; 선물을 사다 보면 몇십 만원 쓰는 건 일도 아니더라고요. 선물 구매하는 과정만 봐도 이곳 사람들이 온 영혼과 돈을 모아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한 현지 분께서 직장 동료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트리 아래에 준비된 이 모든 선물들은 가족들이 서로를 위해 준비한 것으로 크리스마스를 즈음에 트리 주변에 전부 놓여지고 새해가 되면 가족들은 이것을 주고 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개인화와 더불어 핵가족화, 1인 가구의 증가로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대명절을 소가족 위주로, 심지어 홀로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이날을 다른 빨간 날과 다르지 않게 여기며 집에서 조용히 보내거나 이때를 기회 삼아 개인적인 여가나 여행을 즐기러 가지요. 하지만 필리핀에서 대명절을 보내는 모습은 지금의 한국과 많이 다릅니다. 이곳 분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대이동을 하는데 이를 보고 있으면 우리의 과거 한국에서 명절을 보내던 모습이 절로 떠오릅니다. 아무리 먼 타지에 나와 일하던 사람들도 이날이면 휴가를 내고 자신의 가족과 친척,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댁으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 답니다. 특히 어른을 공경하는 한국처럼 필리핀 분들도 집에 방문하면 맨 먼저 집안의 어른에게 가서 인사를 드리는데요. 이들은 존경의 표시로 어른 분의 손을 잡고 그분의 손등 부분을 자신의 이마에 대는 행동을 합니다. 한국에서 어른에게 절을 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과거 한국 사람들이 그랬듯 필리핀 사람들은 자주 못 보던 얼굴들을 마주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반갑게 근황을 주고 받지요. 이곳 분들이 명절을 보내는 모습을 지켜보면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명절이 떠오릅니다. 대가족이 한 곳에 모여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그 분위기와 에너지가 한국에서의 옛 모습과 정말 똑같더군요. 결국 어디에서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필리핀의 크리스마스 시즌은 활기차고 신나지만 아직 가족주의와 대가족 개념이 남아있는 곳이기에 이 기간의 핵심인 크리스마스 당일에 필리핀인들은 가정에서 자신의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합니다. 한편 현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중요한 날이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새해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필리핀 사람들의 새해를 다뤄보겠습니다.